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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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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당현리堂峴里68)


당현리는 고려시대 종덕장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수원부 종덕면이었다. 1914년 진위군 고덕면 당현리가 됐다. 당현은 당현1리의 자연지명인 ‘당고개’, ‘당밑’ 또는 ‘당아래’라는 지명에서 유래됐다. 1914년 이전에는 당현1리 원당현(당고개) 한 마을뿐이었지만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막금리가 통합되고 내촌·청룡말·늠말이 새로 형성되면서 원당현(1리)·늠말·청룡말(2리)·내촌(3리)·하막금(4리)으로 편제됐다.


당현1리의 자연지명은 ‘당고개’, ‘당아래’ 또는 ‘당밑’이다. 마을은 300여 년 전에 개척된 것으로 보이며 전체 50호 남짓이다. 대성大姓은 영양천씨와 의령남씨인데, 천씨의 입향 시기는 250년(1760년 경), 남씨는 270년쯤 된다. 원당현은 구릉과 골짜기가 많아 일찍부터 농경이 발달했다. 농업은 벼농사가 중심이지만 구릉을 개간해 밭농사도 많다. 1970∼80년대 지정리와 야산개발의 영향으로 지금은 7:3 비율이다. 원당현은 미군기지확장지역에서 제 외됐다. 산신제와 같은 공동체 문화도 발달하고 주민들의 생활도 넉넉한 편이다


당현2리의 자연지명은 ‘늠말’과 ‘청룡말’이다. 늠말은 조선의 왕족 덕원군 이서의 묘역 근처 마을이라 하여 유래됐고, 청룡말은 청룡사 주변에 새로운 마을이 생기면서 형성됐다. 두 마을은 모두 30호 남짓이다. 늠말은 연주 현씨 평장사공파가 입향해 10대 300여 년을 세거했으며, 청룡말은 전주 이씨가 대성大姓이다.


당현3리의 자연지명은 ‘내촌’ 또는 ‘안말’이다. 약 100여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평택임씨나 밀양박씨가 대성大姓이며 40∼50호쯤 된다. 화성시 양감면 등에서 전염병과 수해로 이주한 사람이 많다. 한국전쟁 전에는 논농사가 중심이었지만 1952년 K-55 미군기지가 건설되면서 경작지를 수용당해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많아졌다.


당현4리는 ‘하막금’이다. 대략 13호 내외의 마을이며 해방 전에는 10호가 안 됐다. 의령남씨가 대부분이며 입향시기는 300년 내외로 추정한다. 주민들은 농사도 짓지만 미군기지나 회사에 다니는 사람도 많다.


당현리는 당현1리 원당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고덕국제신도시에 편입되거나 미군기지 확장과 관련이 있다. 마을의 존속 여부가 매우 불투명하다. 고덕국제신도시공사가 본격화되면 자연경관도 크게 변할 것이다. 마을이 없어지고 사람과 경관이 변하면 오랜 세월 주민들이 정성껏 모셨던 당제도 사라질 것이다.



당현이라는 지명의 기원 당현1리 당고개(2007)

| 당현이라는 지명의 기원 당현1리 당고개(2007) |



주석

68) 이현수(61세), 임총래(69세), 2007년 12월 내촌 경로당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