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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대별 교육제도와 평택교육>일제강점기>일제강점기의 평택교육>야학夜學
■ 야학夜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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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학夜學15)


야학은 소년이나 청년, 연령이 높아 취학할 곳이 없는 일반 청년, 무산(빈민) 아동을 대상으로 30명부터 많게는 300∼400명씩 모아놓고 보수 없이 가르치는 곳이다. 민중들의 필요성 측면과 민족의 교육적 측면에서 글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과, 새로운 학문에 대한 갈망과 실력 양성이라는 목적이 있었다.


● 국어야학교

평택군에서 1911년 ‘국어야학교’를 설치하고 매일 가르쳐 학생이 30여 명에 이르렀다. 학생 수가 증가하자 평택군은 경기도청에 신청해 교사校舍인 팽성객사를 고쳐 ‘보통학교’로 전환했다.


● 점원店員야학원

평택군에서 1921년 평택 상가에 근무하고 있는 점원들을 위해 ‘점원야학원’이 설립됐다.


● 문맹퇴치야학부

1926년경 송탄면 장안리 이익래는 ‘문맹퇴치’를 위해 야학부를 설립해 매년 수 십 원씩을 운영비로 내놓으며 남녀노소를 가르쳤다. 이익래는 1936년에도 50원을 기증하는 등 사회사업에 노력했다.


● 삼정리三井里야학원

1928년 9월 정시복이 오성면 삼정리에 ‘삼정리야학원’을 설립했다. 설립 당시 학생은 30명이었다.


● 모곡청년야학회茅谷靑年夜學會

1930년 10월경 진위군 송탄면 모곡리 120번지 이란수는 사랑방을 이용해 ‘모곡청년야학회’를 운영했다. 교원은 6명이고 여러 가지 학과와 농가에 대한 경제학습도 가르쳤다.
운영경비는 한 달에 3번의 휴강일을 이용해 남녀 학생들이 가마니를 짜서 공동판매한 수익금으로 조달했다. 4지역으로 나뉘어 1,2,3,4부로 운영하고 『문자보급』이라는 교재를 만 들었으며 남녀 각각 40명을 모집했다. 강연회를 개최해 일반 민중계몽에 노력했고 시민연합운동회를 개최하는 등 체육 건강사업에도 노력했다.


| 모곡청년야학회 활동기사(조선일보) |


● 방혜芳惠야학부

1930년 12월 1일 최기철은 송탄면 가재리 최기만의 사랑채를 빌려 ‘방혜야학부’를 설치하고 40여 명을 모집해 조선어와 산술 등을 가르쳤다.


● 농촌야학회

1931년 11월 창설된 진위군 농촌진흥회는 생활이 어려운 아동의 문맹퇴치를 위해 60여 곳의 ‘농촌야학회’를 운영했다.


| 농촌야학이 한창 번성할 때의 언론기사(동아일보) |


주석

15) 청북교육문화사편찬위원회, 앞의 책, pp.124~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