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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 교육기관23)
●노동야학교勞動夜學校
1909년 진위군 우편국 주사였던 유준흥이 사랑채를 고쳐 ‘노동야학교’를 세웠다. 개교 보름 만에 학생이 50여 명에 이를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훈도는 유준흥 외에 유정기·김정현 등이 교육했다. 진위군 일서면 마두리(현 서탄면 마두리)에 살던 이병철이 사숙私塾을 세워 수십 명을 가르쳤다.
●진동학교振東學校
1910년 4월 17일 진위군 서정리 사립 진동학교 1회 졸업식이 거행됐다. 이때 졸업생은 갑반이 6명으로, 을반, 병반까지 있었다. 갑반의 6명 중 3명이 우등생이었다. 진동학교 졸업식에는 교장 김종환을 비롯한 찬성장·박기양, 경기도관찰사 김사묵, 진위군수 및 관내의 면장 16명이 참석하고 각급의 유지들과 지역민들 다수가 참석해 대성황을 이루었다.24)
●진평의숙振平義塾
1922년 7월 진위군 서남면 통복리 황창헙·서광필·윤창섭 등이 ‘진평의숙’을 설립했다. 학생 수는 약 50여 명으로 증가했고, 같은 해 8월 평택리 장로교회에서 ‘은평강습회’를 개설했다. 은평강습회는 1923년 1학기 때는 보통과 남녀 각 20여 명씩 모집하고 2학기 때 남자만 30명을 모집했다.
주석
23) ① 김명자, 앞의 책, pp.80~81.
② 평택시항일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평택시항일독립운동사』, 황금알, 2004, pp.149~158.
③ 평택군지편찬위원회, 앞의 책, pp.807~808.
24) 『황성신문』 1910년 4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