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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대별 교육제도와 평택교육>일제강점기>일제강점기의 평택교육>서당
■ 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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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은 향촌사회에서 사족士族과 백성이 주체가 돼, 마을을 기본단위로 설립하는 사립 초등교육기관이다. 진위면의 가곡리·봉남리·도곡동·도일동·포승면의 내기리와 방림리 등에 다수의 사족士族 집단이 동족마을을 형성하고 있어 서당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평택지방의 서당은 사족집단이 가문의 자제를 교육하기 위해 설립한 독서당이나 사숙私塾, 그리고 훈장이 직접 설립한 자영서당이었다. 해방 전후 자영서당이 있었던 현덕면 신 왕리의 경우 설립자는 마을에서 사서四書를 읽은 구지식인이었고, 교과목은 천자문과 통감이었다. 서당의 입학 연령은 초등교육을 받은 13∼14세 아이들부터 20세에 가까운 청소 년들이었다.


● 숙성리宿城里 한문서당

1914년 오성면 숙성리에 서당이 개설되고 한문교육과 항일투쟁교육을 실시했다. 수학한 학생들이 1919년 3·1독립운동 때 군중들을 봉기시킨 주동 인물들이라고 한다. 서당을 설립한 인물은 미상이다.


● 지제리芝制里 한문서당

1918년부터 7년간 평택읍 지제리 우기종禹基種의 사랑방에 서당을 설치했다. 우기종은 한학漢學을, 송탄읍 장당리 이 모 씨는 한학과 산학을 가르쳤고, 이 중 사서오경四書五經까지 배운 학생도 있었다. 학생 수는 약 20여 명이었다.


● 양교리梁橋里 한문서당

1923년부터 8년간 오성면 양교리 황로식黃魯軾은 사랑방에 서당을 차리고 학동 10여 명을 가르쳤다.


● 신대리新垈里 한문서당

1925년부터 8년간 병남면 신대리 호택수가 사랑방에 서당을 개설하고 10여 명에게 한학을 가르쳤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