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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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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기

| 새마을기 |


1970년 4월 22일 부산에서의 지방장관 회의 시 ‘새마을 가꾸기’라는 이름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가치론적 신념과 평소의 정치·사회철학으로서의 새마을운동이 제창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운동과 사업방향을 제시했으며 같은 해 5월 6일 “국토를 잘 보존하자”는 친필지시를 했다. 11월 11일 농특사업 경진대회에서 농어촌 지도자들의 창의와 노력을 강조하며 새마을운동이 시작됐다. 정부지원은 내무부 주관으로 계획됐고 전국 읍·면장에게 새마을 가꾸기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본격적인 새마을운동이 태동됐다.



새마을운동 기반구축기


1970년부터 1973년까지를 기반조성 단계라 한다면 1970년은 방향이 제시된 태동기로 볼 수 있다. 1971년 전국 333,267개의 행정 리·동에 시멘트 335포씩을 지원해 10대 새마을 가꾸기 예시사업(마을진입로 개보수·소하천 살리기·소류지정비·공동우물·공동빨래터·퇴비장설치·마을식수 개발 등)을 중점 추진토록 하되 마을에서 필요한 사업을 선정토록 했다. 그 결과 1971년 평택군은 339개 마을에 마을당 335포의 시멘트를 지원받아 소하천 개보수 7개소에 1,402m, 배수문 보수 8개소, 보 보수 300m, 하수구설치 430개소에 8,162m, 암거 963개소, 석축 34개소에 1,031m 등을 설치하거나 보수했다.
1972년에는 새마을 정신을 근면·자조·협동으로 했으며 새마을 가꾸기 운동을 통한 주민 소득증대와 정신개발에 중점을 두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특히 1972년부터 1973년까지 를 새마을운동 기반구축기로 하고 1973년도는 자조·협동 단계인 동시에 적극적 추진단계 로 마을의 발전수준에 따라 기초마을(18,415개), 자조마을(13,943개), 자립마을(2,307개) 로 구분해 차등 지원했다.
1972년 평택군 새마을 가꾸기 실적을 보면 마을 안길확장 183개소 109,184m, 제방보수 7개소에 1,402m, 배수문 보수 8개소, 공중변소개량 17동, 마을회관 신축 137개소, 마을 창고건립 10개소, 간이급수시설 1개소, 메탄가스설치 3개소 41기, 우물설치 11개소, 하수 구설치 430개소에 8,162m를 설치했다.
1973년 마을 안길확장 211개소 79,788m, 안길 신설 16개소 2,980m, 제방보수 16개소 2,550m, 하수구설치 817개소 18,658m, 보설치 2개소 16m, 석축 4개소 130m, 간이급수 시설 2개소, 우물설치 16건에 109개소, 빨래터설치 79개소, 공중변소 5개소, 마을회관 55 개소, 공동창고 14개소, 저온저장고 2개 등을 설치했다.



새마을운동 확산기


1974년부터 1975년까지는 새마을운동의 확산기로 자조·협동을 바탕으로 주민 스스로 의 힘에 의한 자율적인 추진기반을 구축했다. 1975년은 새마을운동을 영속적이고 내실을 기하는 도약의 해로 설정했으며 사업 범위를 넓혀 새마을 가꾸기의 생활화 및 소득증대 기 반을 확충하는 사업을 전개했다.
사업은 첫째 새마을 증산운동, 둘째 새마을 근검운동, 셋째 새마을 인보운동이었다. 사 업을 원활히 지원하기 위해 시군에는 새마을 담당부군수제를 신설했으며 전국에 민간단 체 새마을운동협의회를 구성했다. 평택군의 1974년 새마을 가꾸기 사업 실적은 공동퇴비 사 5건, 마을창고 39동, 공동축사 6동, 양식장 8개소, 보설치 8개소 480m, 도수로 4개소 220m, 안길확장 153건 22,160m, 소교량 가설 43건 273m, 암거 1651건 10,679m, 마을 회관 27동, 어린이 놀이터 2개소, 공동우물 35개소, 하수구설치 865개 38,884m, 간이급 수시설 2개소 등을 설치 완료했다.
1975년 새마을 가꾸기 추진사항은 생산기반 시설 85건 3,188m, 농업용수시설 22건 838m, 농로 801건 249,489m, 소 교량 70건 361m, 마을 안길확장 320건 21,962m, 소 하천정비 13건 1,580m, 공동이용시설 34건, 공동우물 110건, 공동빨래터 53건, 하수구 1114건 71,491m, 간이급수시설 3개소, 메탄가스시설 17개소 등을 설치했다. 1975년 말 평택군의 새마을사업 마을별 수준은 기초마을 56개소, 자조마을 266개소, 자립마을 77개 소 총 399개 마을이었으며 399개 마을 중 231개 마을이 새마을 가꾸기 지원마을로 선정 돼 사업을 추진했다.



새마을운동 확산발전기


1976년은 새마을 사업의 확산 발전기로 3대 운동인 “새마을 증산운동·새마을 근검운동·새마을 인보운동”을 중심으로 더욱 박차를 가했으며 농민들의 증산의욕을 북돋아 높은 수준의 소득을 올렸다.



새마을운동 정착 및 생활화


새마을 운동 홍보 포스터

| 새마을 운동 홍보 포스터 |


1977년부터 1979년까지는 새마을운동의 정착 및 생활화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마을단위의 소규모 사업만 추진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지역과 사업규모를 확대해 사업의 경제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또한 도시와 농촌을 연계시킴으로써 새마을운동의 광역화를 도모하고 도·농간의 일체화를 기하고자 했다. 지역특성을 고려한 새마을운동의 역점사업은 농촌의 경우 소득증대와 문화·복지시설 확충이었고 도시의 경우는 물자절약과 생산성향상 및 노사관계 건전화였다. 농촌지역에서는 축산과 특용작물 재배를 장려하고 농공단지 조성과 새마을 공장건설로 농외소득을 높이고자 했다. 취락구조를 개선하고 문화주택을 건립해 농촌의 생활환경을 향상시켰다. 특히 정부의 규격자재공급으로 주택개량을 촉진하는데 힘썼다.
1979년 새마을 가꾸기 사업추진 실적은 농촌도로정비 및 포장 169건 8,111m, 마을 진입로 17건 763m, 마을 안길 95건 4,440m, 농로 57건 2,908m, 도수로 4건 190m, 보설치 4건 40m, 교량가설 16건 233m, 소하천 정비 8건 328m, 복지기반 조성사업으로 공동이용시설 53건, 하수구설치 338건 19,260m를 설치했고 주택개량사업 301동을 추진했다.



새마을운동의 민간주도기


1980년부터 1989년까지는 체제정비단계로 1970년대는 정부 주도에 의해 추진됐으나 1980년대 이후에는 민간주도 체제로 전환했다. 1980년 12월 1일 사단법인 새마을운동중앙본부가 창립했으며 같은 해 12월 13일자 법률 제 3269호로 공포 시행된 ‘새마을운동조직육성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이 기간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정치, 사회적 혼란을 거쳐제5공화국과 제6공화국에 이르는 80년대에는 새마을운동이 변혁과 침체의 역경을 경험했 다고 할 수 있다. 중앙조직의 지도층 급이 범한 지나친 독주와 운영부실로 한때 국민의 지 탄과 비난을 받아 일시적인 정체에 빠지기도 했다. 소위 새마을 비리로 인해 여론의 지탄 을 받았고 새마을 지도자들의 의욕과 사기가 크게 위축됐으며 새마을 사업에까지 좋지 않 은 영향을 주었다.
1980년대부터 1989년까지 평택군의 새마을 가꾸기 사업 실적은 마을진입로 114건 19,908m, 마을안길 238건 16,060m, 농로 20건 2,700m, 도수로 1건 50m, 집수안거 1 건 87m, 교량가설 9건 100m, 소하천정비 1건 300m, 선착장 2건 150평, 마을회관 6건 182평, 하수구설치 200건 17,511m, 위생변소개량 218건 236평, 새마을 도로포장 238건 65,554m 등을 추진했다.



새마을운동 도약·내실기


1990년부터 1999년까지는 자율 확대단계로 1990년대 들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 시 작했다. 국제적인 개방화와 국내적인 지방화 물결에 부응하는 한편 조금씩 어려워지기 시 작한 경제 발전을 촉진하고 무질서와 비윤리적 풍조로 흐르는 사회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시대적 과제에 직면 했다.
WTO체제로의 진입, 지방자치제의 출범, 1997년부터의 외환위기 도래와 IMF체제 시작 등으로 국가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 전개했다. 1990년대 전개된 새마을운 동의 특색은 첫째, 자율·자립기반을 강화해 독자적인 활동능력 구비 둘째, 세계화·개방 화·지방화라는 내외적 변화에 부응해 국제사회에서의 경쟁력 함양 셋째, 경제위기 극복 을 위한 국민 의식개혁과 사회풍조의 건전화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새마을운동 미래지향적 도약기


2000년부터 2010년까지는 미래지향적 전진단계로 21세기 제2의 새마을운동 도약기라 할 수 있다. 2000년 2월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를 ‘새마을운동중앙회’로 개칭하고 제2의 새마을운동을 선포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사회 만들기’를 새로운 이념으로 지정했다.
지역 현장중심의 봉사기능강화, 사회 각급조직과의 연대협력, 행정과의 건전한 파트너십 구축, 조직 자율역량제고 등 민간의 자율운동으로 개편했다. 새마을운동은 2009년 7월 9 일 녹색 새마을운동중앙본부를 출범시키고 생활의식 개혁운동, 민간사회 안전망운동, 환 경보전운동, 지역 활력화 운동, 통일 및 국제화운동에 나서고 있다. 저개발국에 새마을운 동을 보급해 대한민국 국위를 선양하는데도 기여하고 있다.
2009년 12월 9일 전국 새마을 지도자대회로부터 ‘뉴새마을운동’이 시작됐다. 근면·자조·협동의 기본정신에 3C정신 변화(Change), 도전(Challenge), 창조(Create)의 가치를 더해 역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운동을 추구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뉴새마을운동은 전국 200만 새마을 가족의 축적된 경험과 결집된 역량을 한데 모아 시대적, 국가적,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는 국민운동이다. 정체성을 확립하고 과거 산업화, 민주화를 뛰어넘어 21세기 대한민국의 비전인 선진화를 이루기 위한 희망공동체 운동으로 선진일류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뉴새마을운동의 4대 중점운동은 첫째, 그린코리아(Green Korea)운동 둘째, 스마트코리아(Smart Korea)운동 셋째, 해피코리아(Happy Korea)운동 넷째, 글로벌 코리아(Global Korea)운동이다.




+ 새마을운동의 생산 기반 조성사업

+ 생활환경 개선 사업

+ 새마을운동과 공무원의 역할

+ 농촌 새마을 성공사례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