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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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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궁리新宮里17)


신궁리는 군문교 너머 팽성읍의 첫 마을이다. 근대이전에는 평택현 읍내면 평궁리에 속한 하궁마을이었다가 나중에 분동됐다. 300여 년 전에 하궁리가 형성된 뒤 근대전후 함판들이 간척되면서 형성됐다. 1914년 기존의 하궁리에 신흥 마을과 신호리 호치마을에 속했던 일부지역을 통합해 신흥리의 ‘신’과 하궁리의 ‘궁’에서 한 글자씩 취해 만들었다.


초기 정착민들은 동안들과 함판들, 통한들에 원둑을 쌓고 소규모 개간을 했다. 개간지에는 흉년을 견디지 못한 빈농들이나 유민들이 모여들었다. 나중에 궁궐이나 왕족들이 대규모 간척을 하면서 궁방전이 많아졌다. 하궁이라는 지명의 ‘궁’도 궁방전의 흔적이다.


신궁리의 자연마을은 신궁1리 하궁과 중새터, 신궁2리 함판과 다릿개가 있다. 본래 신흥이라는 마을도 있었지만 1946년 병술년 물난리에 떠내려갔고 살아남은 주민들은 하궁리나 두1리 머래 마을로 이주했다. 해방 전 하궁마을은 10여 호, 중새터가 3∼4호쯤 거주했다. 각성바지 마을인데다 생활환경이 열악해 3∼4대 이상 거주한 사람이 거의 없다.


신궁2리 함판은 19세기 중반, 다릿개는 근대 이후에 형성됐다. 주민들은 새로운 경작지를 찾아오거나 품을 팔러 왔다가 눌러 앉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초기에는 몇 호가 안 돼서 궁1리에 포함되다가 1980년 분동됐다. 1946년 물난리 때 함판마을에서는 5명의 주민이 떠내려갔다. 지붕이나 통나무에 매달려 떠내려가던 사람들이 석봉리에서 물이 뒤집히면서 모두 사망했다. 1970년대 안성천방조제 준공과 경지정리사업 그리고 안성천 제방이 축조돼 만성적인 수해에서 벗어나게 됐다.



신궁리와 함판들(2011)

| 신궁리와 함판들(2011) |



주석

17) 송봉성(65세), 김상운(70세), 2008년 8월 12일 신궁1리 입구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