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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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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송담리松潭里27)


송담리는 조선시대 수원도호부 현암면 지역이었다. 1895년 수원군이 됐고, 1914년 버들미·점촌과 함께 진위군 현덕면 인광리가 됐다. 1986년 안중출장소가 설치되고 1989년 안중면이 설치되면서 안중면 송담리로 분동됐다. 송담리는 1990년대 중반 수정골에 신창아파트가 건설되고, 현화지구택지개발로 이주한 화양리 주민들과 포승국가공단 건설로 집단 이주한 만호리 사람들이 집단이주단지를 조성했다. 그러나 2012∼2013년 송담1리가 송담택지개발지구 안에 포함되면서 폐동됐다.


송담이라는 지명은 송담1리 소루무지에서 유래됐다. 소루무지는 소가 누워 있는 ‘와우형’의 지형에서 유래됐다. 자연마을은 소두각골·구억말·신창아파트·새동네가 있다.


소루무지는 해방 전후 25호가 거주했다. 주민들 대부분은 평창이씨였고 수성최씨와 한양조씨가 1집씩 있었다. 한국전쟁 뒤에 유입된 피란민은 10여 호쯤 됐다. 제3공화국 초기에는 반공포로들이 정착했으나 모두 떠나고 지금은 한집만 남았다. 나중에 전라도에서 올라온 빈농들이 정착했다. 근래에는 안중읍내와 관련돼 정착한 사람들도 많다. 1970년대 후반 소루무지의 규모는 80호를 상회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포승국가공단건설로 고향을 잃은 사람들과 현화택지지구에 포함된 사람들이 수정골로 집단 이주하면서 40~50세대가 늘었고, 이주가 완료된 뒤에는 100여 세대가 넘었다. 1990년대 후반 붉은 고개에 신창아파트가 들어섰다. 3개 동 270여 세대가 거주한다. 1995년 경 포승읍 만호리와 안중읍 현화택지지구에서 집단 이주한 사람들이 수정골에 새동네를 형성했고 마을규모는 130여 세대로 커졌다.


현재 송담1리는 재개발사업으로 마을이 해체됐다. 지난 2000년 경 주민들도 모르는 상태에서 도시구획정리사업이 계획됐다며 분통을 터트렸던 주민들도 이제는 모두 떠나고 택지개발을 하는 포크레인이나 불도저 소리만 요란하다.



택지개발 전의 송담1리 소루무지

| 택지개발 전의 송담1리 소루무지 |



주석

27) 이병익(78세), 송담1리. 평창 이씨 익재공파 후손. 2010년 1월 7일 자택에서 인터뷰
      이병재. 송담1리 이장. 2010년 1월 전화 인터뷰
      김영배, 송담2리 이장. 2010년 1월 전화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