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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구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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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황구지리黃口池里62)


황구지리는 조선시대 이래 단일마을이었다. 황구지리라는 지명은 ‘항곶포(진)’에서 유래됐다. 조선후기 황구지리 앞에는 항곶포가 있었고, 군사용으로 놓은 석교石橋가 있었는데, 바닷물이 밀려들면 누런 물이 흘러 황구지라고 했던 것이 마을지명으로 굳어졌다.


황구지리는 대략 300여 년의 역사를 가졌다. 해방 전후 35호가 살았는데 1971년 수해 때 금각3리에 속했던 진위천 둑방 안쪽 둑너머마을 20여 호가 집단 이주하면서 규모가 늘어났다.


항곶포는 폐동廢洞된 옛 둑너머마을(금각3리)에 있었다. 1914년 자료에는 황구포리라고 불렀다. 항곶포는 1960년대 후반까지 나루로 기능했다. 인천의 용유도나 아산만 하구 길음리·당거리 어부들이 강다리·숭어·새우젓·어리굴젓·민어포를 싣고 포구로 들어왔다. 2009년 황구지리는 K-55 미공군기지 확장에 의해 수용됐고 주민들 대부분은 당현리에 마을을 조성해 이주했다.



미군기지확장으로 폐동된 황구지리(2006)

| 미군기지확장으로 폐동된 황구지리(2006) |



주석

62) 황영승(76세), 이평기(71세), 2006년 1월 황구지리 경로당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