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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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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무李成茂의 묘


소 재 지 : 진위면 마산리 산84번지(수촌)



•현황 : 이성무는 본관은 경주, 오성 이항복의 증조부이다. ‘거먹비 산소’라고도 불리던 묘는 실전 됐다가 오성과 그의 부친 몽량의 이름이 새겨진 비를 땅속에서 찾아 세웠다고 전해진다. 재질이 대리석 계통의 묘갈로 색이 매우 검은 편이다. 묘갈은 1724년(경종 4)에 세워졌으나 음기 부분은 마모가 심해 판독하기가 어렵다. 묘의 우측에 새롭게 단장한 묘표가 있다. 묘비에는 ‘증 이조판서 행안동판관 이공성무지묘증정경부인창녕성씨贈 吏曹判書 行安東判官 李公成茂之墓贈貞敬夫人昌寧成氏’라 적혀있다. 주위에 후손 묘 20여기가 있다.



| 이성무 묘역 |



이승李昇의 묘


소 재 지 : 진위면 동천1리



•현황 : 이승은 고려말∼조선초 인물로 전농시 판관을 지냈다. 대제학을 지낸 장육당 최양의 딸과 혼인했고, 세조의 극구인 파평부원군 윤번과 사돈이었다. 가장 위쪽에 이승의 묘가 있고, 아래쪽에 부인 전주최씨의 묘가 있다. 그의 묘소는 장대석으로 석축을 쌓은 후 봉분을 조성했고 앞쪽으로 혼유석·상석·향로석·장명등이 놓여있고 그 앞 좌우로 문인석이 서있다. 아래의 부인 묘소도 장명등을 제외하고 같은 양식이다. 우측 묘갈은 옥개석 없이 원두형비신이 있으며 1724년 ‘숭정기원후재갑신崇禎紀元後再甲辰’에 후손이 건립했다. 앞면에 ‘조선 증이조참판행전농판관이공증지묘朝鮮 贈吏曹參判行典農判官李公昇之墓’라는 기록이 있고 뒷면에는 그의 10세손이며 영의정을 지낸 문충공 운곡 이광좌의 음기가 새겨져 있으나 마모돼 글씨를 식별하기 어렵다. 부인 전주최씨 묘갈 역시 운곡 이광좌와 아곡 이태좌를 비롯한 후손들이 건립한 것으로 앞면에 ‘조선 증참판 이공승부인전주최씨지묘朝鮮 贈參判李公昇夫人全州崔氏之墓’라고 새겨져있다. 뒷면 음기는 판독이 불가능하다.



이광좌李光佐와 이연손李延孫의 묘


소 재 지 : 진위면 동천1리 산164-2



•현황 : 이광좌(1674~1740)는 본관은 경주, 진위면에서 출생하고 성장했다. 자는 상보尙輔, 호는 운곡雲谷이며 조선의 문신이다. 항복恒福의 현손(5대손)으로 1694년(숙종 20) 문과에 급제해 대제학大提學을 지내고 영의정領議政에 이르렀다. 소론少論의 거두로 당쟁으로 인한 처세상의 파란이 많았다. 박동준朴東俊의 참소를 받고 울분해 단식 끝에 급사했다. 글씨와 그림에 능했다. 묘비에 ‘조선영의정치사봉조하운곡이선생광좌지묘정경부인풍산홍씨부좌朝鮮領議政致仕奉朝賀雲谷李先生光佐之墓貞敬夫人豐山洪氏祔左’라고 적혀 있다.
이연손(1404∼1463)은 조선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경주, 이승의 아들이며, 이항복의 고조이다. 무과에 급제했고 무공이 뛰어나 교하현감에 올랐다. 1455년 상호군으로 원종 일등공신에 올랐다. 1457년 형조참의를 지냈고 1459년 다시 첨지중추원사를 제수 받았다. 동년 7월 중추원 부사겸 전라도 관찰사가 됐으며 이듬해 한성부윤, 1462년 공조참판을 지냈고 영의정에 추증됐다. 묘비는 1873년(고종 10) 이유원이 개수한 것으로 ‘공조참판증 영의정이공연손지묘工曹參判曾 領議政李公延孫之墓’라고 적혀 있다.



이세필李世弼의 묘


소 재 지 : 진위면 봉남3리(아곡)



•현황 : 조선후기 문신이고, 학자로 2차 복상문제 때 송시열을 옹호하다 유배됐다. 1864 년 형조좌랑이 된 뒤 용인현감·진위현령·삭녕군수 등을 지냈다. 기사환국 때 사직하고 학문연구에 힘썼다. 예학에 밝았고 저서는 1696년(숙종 22)에 편찬한 음악이론서인 『악 원고사樂院故事』가 있다. 1722년(경종 2) 아들인 호조판서 이태좌李台佐의 추은推恩에 의 해 이조판서에 추증됐다가 이듬해에 다시 의정부좌찬성이 내려졌다. 영광의 백산서원柏 山書院과 김제의 용암서원龍巖書院에 제향됐다. 묘비·상석·망주석등이 있으며 남쪽으로 400m에 신도비가 있다. 묘비에는 ‘조선형조참판시문경공 구천이선생세팔지묘정경부인 반남박씨부좌朝鮮刑曹參判謚文敬公 龜川李先生世弼之墓貞敬夫人潘南朴氏祔左’라고 적혀 있다.



이정좌李鼎佐와 이계조李啓朝의 묘


소 재 지 : 진위면 가곡리 70-1(신가곡)



•현황 : 이정좌 묘의 좌측에 이계조의 묘가 있다. 이정좌의 본관은 경주, 이세필世弼의 아 들로 좌의정 이태좌의 동생이며 선공감 부정을 지냈다. 부인으로 숙인 진주유씨, 함양박 씨가 있었다. 묘갈은 윤동도가 글을 짓고, 서지수가 글을 썼으며 1762년(영조 38) 세워 졌다. 1829년(순조 29) 세워진 신도비는 이덕수가 글을 짓고 서명균이 글을 썼으며 전 액篆額은 조명교가 했다. 이계조(1793∼1856)는 본관은 경주, 자는 덕수德叟, 호는 동천桐泉이며 석규의 아들이 다. 1831년(순조 31) 식년문과에서 갑과로 급제해 헌종 때 이조참의·동지중추부사·대 사성 등을 역임했다. 1849년(철종 1)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고 1852년 공조판서를 거쳐 1854년 이조판서가 됐다. 글씨에도 뛰어나 양주의 경릉비景陵碑를 썼다. 시호는 문 정文貞이며 배는 정경부인 반남潘南박씨이다.



심순택沈舜澤의 묘


소 재 지 : 진위면 봉남리 산18-1



•현황 : 심순택沈舜澤(1824∼1906)은 구한말 영의정을 지냈다. 묘에는 묘비·망주석·문 인석·석등 등이 있고 묘 아래 좌측 산기슭에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는 1908년 3월에 세웠고 원문은 규장각 대제학 김학진이 찬하고, 민병석(시종원, 대훈위)이 썼으며, 두전頭篆은 의정부 참정 김성근(1835∼1918:서도가)이 썼다. 규모나 필체가 화려하다.



| 심순택 묘역 |



마산리 우원유 일가 묘역


소 재 지 : 진위면 마산리 산70(수촌)



•현황 : 단양우씨 묘역에 우원유의 묘는 최정상에 있고 밑으로 우척 등 16기의 묘소가 있다. 우원유禹原揄는 안청공 홍강洪康의 4자이다. 태종 때의 문신으로 세종조에 정6품 감찰을 역임하고 청백리로 이조참판에 추증됐다. 정부인은 밀양박씨다. 태종 때 마산리에 낙향해 단양우씨 집성촌이 형성됐다. 본래의 묘는 진위 남10리에 썼다고 하나 전쟁으로 없어지고 1987년 다시 만들었다. 최근에 세운 묘갈·망주석이 있다. 우신·우공의 묘에는 묘비와 석인상이 있다.



유자柳滋의 묘


소 재 지 : 진위면 견산리



•현황 : 조선 선조 때 진위로 낙향해 문화유씨 수사공파의 집성촌을 이루었다. 묘는 견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견산리 부성의 머리 부분인 사두혈에 썼다고 전해오며 석물은 묘갈 상석뿐이다. 묘갈은 1913년 세웠던 것이 손상돼 1965년 다시 만들었다.



가곡리 안동권씨 묘역


소 재 지 : 진위면 가곡리 산77-1(윗말)



•현황 : 안동권씨 묘역은 만기사 입구에 형성되어 있다. 권발은 안동권씨 18세 손으로 과천현감을 지냈으며, 가곡리에 추밀공파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권발묘 주위에 16기 정도의 안동권씨 근현대 묘가 위치한다. 묘는 동향으로 석물은 현대에 만들어졌다.



동천리 안동권씨 묘역


소 재 지 : 진위면 동천리 산209



•현황 : 가곡리 윗말 남쪽 구릉부에 위치하고 있다. 사당 좌측에는 28세손 권건權健과 그 부인 죽산안씨竹山安氏, 29세손 권시달權時達의 숙부인淑夫人 풍천임씨豊川任氏, 그리고 31 세손 통정대부通政大夫 권장규權章圭와 숙부인 전의이씨全義李氏등 3기의 묘소墓所가 있 다. 묘소에는 각 묘표만이 세워져 있다. 묘역 우측에 1981년 세워진 안동권씨사당인 기 지사가 있다.



정인형의 묘


소 재 지 : 진위면 은산리 산6-1



•현황 :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 정도전 제단비가 있는 서쪽 산 정상부 가는 중간에 있다. 숙부인 윤씨와 합장된 쌍분묘이다. 묘역에는 망주석 1쌍·상석·향로석·묘표·석인상이 있다.



정진鄭津의 묘


소 재 지 : 진위면 은산리 산3



•현황 :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방촌) 뒷산에 북동향에 있다. 장방형의 봉분은 최근에 호 석으로 치장했다. 상단에 묘표와 혼유석이 있고 하단에는 상석과 향로석 문인석 1쌍과 최근에 새로 조성한 망주석 1쌍, 석양 1쌍, 장명등 석인상 1쌍이 있다. 묘표는 화관석과 비신 기대로 구성돼 있다. 비신 앞면에 ‘증 숭정재부 의정부좌찬성겸 판의금부사 행 자 헌대부형조판서희절공정진지묘贈 崇政大夫 議政府左贊成兼 判義禁府事 行 資憲大夫刑曹判書僖 節公鄭津之墓’라고 적혀 있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