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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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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덕목리95)


덕목리는 고려시대 광덕현의 중심이었고, 근대 이전에는 수원부 안외면과 광덕면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백석동, 소당리蘇堂里, 광덕면 덕목리, 연화리蓮花里, 소외리 일부를 통합하여 진위군 현덕면 덕목리라고 했다.


덕목리의 자연마을은 5개다. 덕목1리는 소당이다. 소당은 그냥 ‘소댕이’라고 부른다. 평택시사에는 ‘마을 안에 중국 송나라의 문호 소동파의 글을 대문에 걸어 놓은 집’이 있어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하지만 근거는 미약하다. 덕목2리는 ‘백석’, 다른 이름으로는 ‘차돌백이’다. 백석 입구에는 큰 차돌이 박혀있었다(현재는 한쪽에 치워 놓았음).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이 돌은 옛날에 신왕리 마안산 봉우리에서 날개달린 장수가 북쪽을 향해 200근이나 되는 차돌을 던졌는데 그것이 날아와 박힌 것이라고 한다. 이 마을은 전체 28호이며 평택 임씨의 동족마을이다. 논보다 밭이 많으며 구릉이 발달하고 척박해 빈궁했다. 그래서 과거에는 보릿고개도 심하게 겪었고 1970~80년대에는 근처 평택농장에서 일하는 주민들도 많았다. 덕옥3리는 ‘찬샘’이다. 찬샘은 냉정우물이라고도 부른다. 마을규모는 본래 30여 호가 모여 살았다가 한 때 80호로 증가하였고 지금은 57호만 남았다. 이 마을은 덕목4리와 함께 곡부공씨 어촌공파의 동족마을이다. 옛날에는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지만 근대전후 간척사업으로 농경지로 변했다. 대부분이 논농사 지대이며 땅이 기름지고 농업용수가 풍부해서 경제적으로 부유했다.


덕목4리는 ‘원덕목’이다. 원덕목은 ‘덕목리성’의 동성東城 안에 형성된 마을이다. 이 마을도 곡부공씨의 동족마을로 ‘덕목’이라는 지명은 ‘입향조 공부孔俯가 덕행德行과 화목和睦을 강조했기 때문’에 유래되었다고 한다. 마을이 자리 잡은 덕목리성은 고려시대 광덕현의 읍성邑城으로 추측되며, 마을규모는 70여 호로 근동에서는 가장 큰 마을이다. 덕목5리는 ‘은곡’이다. 은곡은 은골이라고도 부른다. 이 마을은 곡부 공씨의 입향조 공부가 처음 정착했던 곳이며, 여양진씨의 동족마을이었다. 은곡이라는 지명도 어촌공 공부가 고려가 멸망한 뒤 두문동에 은거하다가 낙향하여 숨어 살았기 때문에 유래됐다고 한다. 은곡과 함께 덕목5리를 형성하는 연화동은 본래 바닷가 마을이었다. 그래서 주민들도 어업을 많이 했지만 1974년 아산만방조제가 준공되고 갯벌이 간척되면서 농촌마을로 변모했다.


덕목리에는 전통사찰 심복사가 있다. 심복사는 조선 명종 때 건립된 것으로 전한다. 대적광전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신라 하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물 제565호로 지정됐다. 심복사는 평택시민들이 즐겨 찾는 문화재이다.



곡부공씨의 마을 덕목3리 냉정(2013)

| 곡부공씨의 마을 덕목3리 냉정(2013) |



주석

95) 공기택(72세), 2005년 7월 덕목4리 경로당에서 인터뷰
      공재환(86세), 공은택(83세), 공길택(67세), 공수열(79세), 2013년 3월 덕목3리 경로당에서 인터뷰
      강대식(76세), 임군선(71세), 2013년 2월 덕목2리 경로당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