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평동 평택금융조합 터 > 유적과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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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평동 평택금융조합 터

본문

위 치 : 원평1로 185번 일대

시 기 : 1914년



대한제국은 1907년 5월 지방금융조합규칙과 지방금융조합설립에 관한 건을 공포하고 그 해 8월 광주지방금융조합설립을 시작으로 1910년까지 130여 개의 지방금융조합을 설립했다. 금융조합은 영농자금대부를 비롯해 농산물 위탁판매, 종자나 비료 구매 등 업무가 목적이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신용협동조합의 형태를 지향했지만 실제는 총독부가 직접 통제하고 농촌화폐정리사업, 납세선전, 농사지도 장려 등 식민지배 말단기관의 역할이었다. 지방금융조합은 1914년과 1918년 법령 개정을 통해 농촌촌락과 도시에도 금융조합을 설치하고 각 도에 금융조합연합회를 결성하는 등 점차 체제를 정비했다. 또 구매나 판매 사업을 제한하고 농업자금 이외의 대부사업도 벌여 1938년 말 조선식산은행에 버금가는 금융기관이 됐다. 1945년까지 912개의 조합이 있었고 1956년 농업은행 설립으로 해산됐다.



| 1920년대 금융조합거리 |



평택지역에는 1914년 평택금융조합 이 시작돼 서정리금융조합, 안중금융 조합이 설립됐다. 평택금융조합은 조 합원 출자로 설립됐으며 1921년 당시 888명 조합원이 있었다.
1922년 9월에는 조합원 수가 1,027 명, 대부금이 16,438원 34전, 대부액 138,269원이었다. 1924년 오성면 안 중리에 안중금융조합이 설립됐으며, 경부선 서정리역 앞에 서정리금융조합 이 설립됐다.
평택금융조합은 평택역 광장 우측 북쪽에 있었다. 1950년 7월 평택폭격으로 건물이 파 괴됐다. 금고만은 2009년까지 민가 안에 남아 있었다. 2009년 평택역 민자역사에 서부역 광장이 확장돼 철거됐다.



| 일제강점기 평택금융조합터(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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