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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정리本井里15)
본정리는 동쪽으로는 두정리, 북쪽으로는 함정리와 신대리, 서쪽과 남쪽으로는 노양리·노성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마을은 바다와 인접한 낮은 구릉의 남쪽 기슭에 형성됐다. 예로부터 논농사가 발달했다. 구릉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본정1리 앞 꽃동산이다. 꽃동산기슭에는 화포 홍익한의 묘와 비각, 그리고 계성초등학교가 있다. 본정1리는 고려시대 양광도 경양현 지역이었다. 조선 태조5년(1397) 경양현이 폐지되면서 직산현 경양면이 됐다. 1895년 갑오개혁 뒤 평택군에 편입됐고 1914년 본언리와 경정리 일부를 통합해 본정리가 됐다.
본정1리의 자연지명은 새나리다. 새나리는 옛날 경양창에 상주했던 관리가 탐학이 심했는데 새로운 관리가 와서 혼을 내주고 평화롭게 했기 때문이라는 설화가 전해온다. 본정1리에는 새동네라는 자연마을도 있다. 새동네는 5∼6호 정도로 일제 말 일본해군시설대비행장이 건설되면서 강제 이주당한 함정리 주민들이 이룬 마을이었다. 본정2리 아리랑고개는 옛 경정리의 일부였다. 1952년 K-6미군기지가 건설되면서 미군기지 후문에 기지촌이 형성돼 ‘아리랑고개’라고 불렀다. 아리랑고개에는 각종 상가와 식당이 들어섰고 미군기지와 관련된 사람들이 정착했다. 기지촌은 본정2리뿐 아니라 함정리·도두리 등 주변마을까지 영향을 끼쳤다. 기지촌 주변마을 주민들 민원으로 미군기지 통문이 옮겨가고 미군들의 출입이 금지된 뒤 KSC에 소속된 미군기지 노무자들과 미군헌병들, 부대 내 술집이나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기지촌이 발달하면서 아리랑고개 인구도 급증했다. 아리랑고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100여 세대가 거주했고 빌라들이 들어서면서 190여 세대로 늘었다.
| K-6 미군기지 후문에 형성된 본정2리 아리랑고개(2008) |
주석
15) 백무견(88세), 2003년 본정1리 천주교 공소에서 인터뷰, 이상학(74세), 방무용(81세), 2008년 본정1리 자택에서 인터뷰
임연수(80세), 이갑용(76세), 안순열(70세), 송태수(72세), 2009년 2월 23일 본정2리 경로당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