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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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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리新虎里19)
신호리는 신리新里와 호치虎峙가 통합돼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농업과 어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마을을 만들었고, 근대전후에는 간척과 관련돼 인구가 증가했다. 지형은 원정리에서 이어진 30미터 내외의 낮은 구릉이 신호1리 새말까지 이어졌고, 2리 호치마을은 검은들 중앙에 형성됐다. 호치마을 북동쪽으로는 안성천이 흐른다. 해방 전후 안성천은 자주 범람해 수해와 염해를 끼쳤다. 호치마을은 1946년 병술년 물난리와 1970년대 초 물난리 때 수해를 입었다. 신호리는 식수와 농업용수가 부족했다. 1974년 아산만방조제 준공과 경지정리사업, 안성천 제방축조 영향으로 척박했던 신호리가 크게 변했다.
2013년 기준 신호1리에서 새말은 40호 내외, 신호2리 호치는 30호 가량 된다. 호치의 경우 해방 전후에는 10호가 안 됐다. 1970년대 이후 아산만방조제가 준공되고 경지정리사 업이 진행되면서 호치의 인구가 늘었다.
| 간척과 함께 성장한 신호1리(2008) |
주석
19) 원용관(70세), 강수균(80세), 2003년 신호1리 경로당에서 인터뷰
김흥종(76세, 신호1리), 강병균(74세), 안교천(72세), 2008년 8월 7일 호치마을 입구 굴다리에서 인터뷰